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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1 맑스 「자유 무역 문제에 관한 연설」독서노트
  2. 2010/07/02 정념의 공통성
  3. 2010/06/28 The history of the Congreso Nacional Indigena
  4. 2010/04/28 사랑
  5. 2010/04/26 탈주 (1)
  6. 2010/04/26 추상의 양면성
  7. 2009/12/24 대필
  8. 2009/12/15 시인의 말
  9. 2009/11/16 황강 (2)
  10. 2009/11/15 『조건들』 4장 시에 대한 철학의 의존 발제문

자유 무역은 생산력들을 증대시킵니다. 산업이 성장하면, 부, 생산력들, 한마디로 말해 생산적 자본이 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면, 노동의 가격 따라서 임금 또한 증가합니다. 노동자에게 있어 가장 유리한 조건이란 자본의 성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정해야 합니다.(중략)

그러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노동자에게 있어 가장 유리한 상태인 자본이 성장할 경우에 노동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는 사멸할 것입니다. 생산적 자본의 성장은 자본의 축적과 집적을 의미합니다. 자본의 집중은 분엽의 증대와 기계 사용의 증대를 초래합니다. 분업의 증대는 노동의 특수 기능, 노동자의 특수 기능을 파괴하고, 이 특수 기능을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으로 대체함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증대시킵니다.


자유무역으로 인한 자본의 생산력의 증대-> 노동자의 파멸
자본의 정체, 산업의 쇠퇴-> 노동자의 파멸

그렇다면 둘 중 하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전체를 부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은 경제법칙들에 의해 온갖 가혹함에 의해 타격을 입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거나.


더 나아가 이 노동자들의 불행은 산업의 진보와는 불가분의 것이고 국민 복지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할 때, 그는 부르주아 계급의 복지는 노동 계급의 불행을 필요조건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우링 씨가 죽어가는 노동자들에게 해대는 위로, 그리고 자유무역론자들이 확립해 놓은 모든 보상 학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으로 귀착됩니다:
 죽어가는 수천의 노동자 여러분, 절망하지 말라. 당신들은 안심하고 죽을 수 있다. 당신들 계급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 계급의 숫자는 언제나 너무 많아서 자본은 그 일부를 죽이면서도 절멸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더욱이 만약 자본이 착취 재료인 노동자들을 재차 착취하기 위해 그들을 항상 신경써서 준비해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본이 유효한 사용법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노동자들의 불행은 산업의 진보와는 불가분의 것이고 국민 복지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  16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개소리.



께네로부터 리카도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자들이 개진했던 모든 법칙들은 지금까지 상업상의 자유를 구속해 왔던 질곡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 법칙들은 자유 무역이 실현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확증됩니다. 그중 제1법칙은 경쟁이 모든 상품의 가격을 그 생산비의 최소치로 인하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의 자연가격은 임금의 최소치입니다.


"기계 장치에서의 모든 개량의 변함없는 목적과 경향"이 "인간 노동의 가격을 저하시키는 것"이듯이, 경쟁의 제1목적은 자본의 앵무새들이 씨부리듯이 인간능력의 개화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상품의 가격을 그 생산비의 최소치로 인하시키는 것"이다. 노동력 상품도 당연히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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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으로는 비이성적인 인간들이 어떻게 집단적으로는 이성에 복종하겠다고 결단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가 바로 앞에서 인용한 원문의 괄호 친 구절이 시사하듯이["정신 나간 자로 보일까봐 아무도 감히 이를 노골적으로 위반하지는 못한다" 신학정치론 16장] 그런 결단을 내리도록 그들을 강제하는 것은 그들이 함께 모여서 토의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따라서 사람들을 이성에 복종하도록 추동하는 것은 이성적인 욕망의 힘이 아니라 오히려 정념적인 명예의 야망이거나 이 야망의 부정적 이면, 곧 수치에 대한 공포이다. 하지만 결과만은 사실상 이성에 부합하는데, 이는 야망이 이성이어서가 아니라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4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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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rtford-hwp.com/archives/41/index-cba.html


Declaration from the Mountain of Guerrero
Convencion Nacional Indigena (CNI), 25 December 1994. Having reunited during the 16,17,18th of December of 1994 in the ancient territories of the People of the Rain, the People of the Heart of the Mountain, and the People of the Tiger in Tlapa, Guerrero the Indigenous Pueblos and Organizations of Mexico have spoken our Word. The struggle of our brothers in Chiapas. Autonomy constitutes one of our principal rights. Constitutional recognition. Struggle within a comprehensive process of Mexican national democratization. Women delegates. The indigenous movement at the global level.
 
The Declaration of San Cristobal
National Congress of Indigenous Peoples, 10 and 11 January 1998. The Continuation Committee extension of the National Congress of Indigenous Peoples (NCIP), which met from the 10th to the 12th of January in San Cristobal de las Casas, Chiapas, elaborated the following Political Declaration right after the recent incidents that aggravated the situation of indigenous peoples of Chiapas, and it was affirmed that indigenous peoples from other regions of Mexico are suffering the same situation.
 
Netwarriors—March '98 CNI Report
From the National Indigenous Congress, 13 March 1998. We are still waiting for our rights to be recognized. A relationship based on the principles of plurality, sustainability, integrity, participation, and free determination declared in San Andres Sacam Ch'en de los Pobres, but the response of the Mexican government has been one of military harassment and repression against our people.

Indigenous Peoples Congress Statement
Nuevo Amanecer Press, 12 October 1998. The Second National Indigenous Congress. We assume the historic task, the comprehensive rebuilding of our Indigenous Peoples. By affirming our identity, we affirm that of everyone; that of those who wish to build a large house where all of us who are all fit. We ratify that the San Andres Accords are our word, of which the essence is the constitutional reform proposed by the Cocopa; the constitutional recognition of our full collective rights will be the central focus of our struggles and concerns.

Preliminary Report on Results from Indigenous National Congress
Nurío, Michoacán, 2, 3 and 4 March 2001. The Third Indigenous National Congress was attended 3,300 indigenous delegates officially sent by their communities, representing 42 of the 56 ethnic groups in Mexico. The assembly demanded the recognition of indigenous rights in the Mexican constitution, in the form written by the Cocopa (Concord and Peace Commission). Vicente Fox’s Plan Panamá-Puebla and the proposed superhighway on the Isthmus of Tehuantepec in Oaxaca and Veracruz. Demilitarization and release of all indigenous political priso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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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10/04/28 12:03 from 서고/독서노트

 

5장 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갖는 인식과 앎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그 사물이 더 훌륭하고 좋은 것으로 보일수록 우리의 사랑도 점점 더 커진다.

더 좋은 것을 알게 되거나, 우리가 사랑했고 혹은 훌륭하고 좋다고 여겨왔던 것이 커다란 괴로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가 가졌던 사랑이 없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칠 수는 없다(놀라움이나 다른 정념들에 대해서는 그러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그것은 불가능하다. (2) 우리가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대상에서 찾아낸 좋은 것 혹은 이로운 것에만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그전에 그것을 아예 몰랐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자유에 달려있지 않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면, 분명 우리는 또한 아무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이다. 우리의 본성이 약하게 주어져 있기 때문에 만약 우리와 결합되는 어떤 것, 그리하여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어떤 것을 향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어떤 것을 향유하고 그것과 결합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메모: 경철수고에서 맑스가 인간이 유적존재일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쓴 부분

스피노자, Short Treatise on God, Man, And His Well-Being (Edwin Curley판 1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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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2010/04/26 19:04 from 서고/독서노트

전투에 취미가 있는 우리의 독자들은 탈주로서의 계급투쟁 관념이 충분한 투쟁을 함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꺼림칙 할지도 모르겠다. 걱정할 것 없다. 일찍이 모세는 권력자들이 전투없이 사람들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탈주가 맨발에 무일푼으로, 벌거벗인 삶인 채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것인 바를 취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과거 노동의 산물이자 우리 미래의 자율적 생산과 재생산의 수단인 공통적인 것에 대한 재전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전투의 장이다.

Antonio Negri & Michael Hardt, Commonwealth, 164p.


+ 왜 이런 글에 마음이 설레고 그럴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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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은 자본의 기능과 자본에 대한 비판 모두에 본질적이다. 실제로 <자본론>에서 맑스의 출발점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토대로서의 추상적 노동에 대한 분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그 구체적 적용과 무관하게 일반적 노동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재단사, 배관공, 기계공의 구체적 노동들로부터 추상되어야 한다고 맑스는 설명한다. 상품에 응고된 이 추상적 노동이 모든 상품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실체이며, 상품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측정가능하게 해주고 결국 화폐가 일반적 등가물로 기능하도록 해준다. 맑스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자본론의 첫 페이지들에서 정치적 상응물들을 분간해내려는 열망에 가득차서, 이러한 구분을 정치적 입장과 관련짓는다. 구체적 노동에는 찬성, 추상적 노동에는 반대, 사용가치에는 찬성, 교환가치에는 반대. 그러나 맑스는 추상을 양가적으로 본다. 추상적 노동과 교환 체계가 잉여가치를 추출하고 자본주의적 통제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인 것은 맞다. 그러나―서로 다른 직업에서의 노동에 공통적인 것을 드러내주는―추상적 노동 개념은 노동계급을 생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추상적 노동 없이 노동계급은 없다! 이는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본질적 기능들[이 잘 실행되도록]을 보장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저항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수단들을 창조해내는 방식의 한 사례[일 뿐]이다. 자본주의의 추상은 항상 공통적인 것에 의존하며 공통적인 것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단지 그것은 계속해서 공통적인 것을 신비화하고자 애쓸 따름이다. 따라서 추상은 양가적이다.



Antonio Negri & Michel Hardt, Commonwealth, 159p. 부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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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필

2009/12/24 19:28 from 서고/L을 위한 노래

12월 모일
구리에서 강변 역을 향하는 시외버스 안.

수중엔 단돈 5만원
이것으로 남은 날은 20여일
만 오천원짜리 케이크를 하나 사고
아들은 구리역을 향해 덜컹이는 전철 안에서
귤 오천원 어치를 더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강바람이 찬 구리에는
당신의 생일에
밤 늦도록
닭 튀기는 어머니

모처럼 오는 아들에게 줄
고깃국을 끓여놓고
자꾸만 시계를 올려다보는
사람

자정으로 가는 시간
마지막 닭은
대리로 받은 돈 2만원으로
새끼들에게 줄 통닭 한 마리를 사고
봉다리를 흔들며 집으로 향하는
40대 중반의 아저씨에게

아가, 또 오너라
밥 꼭 챙겨먹고

아들은 강변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싸워야만 하는 이유,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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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2009/12/15 14:45 from 서고/독서노트
『저 꽃이 불편하다』

시인의 말

이 시집을 다시 펼치는 것이 두렵고 부끄럽다.
지난 몇년 동안 나는 내 안의 세계가 격심한 혼란 속에서 해체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돌아보건대, 나에게 시 쓰는 일이란 그런 해체의 또다른 과정이었거나, 어떤 치유가 아니었던지.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한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잊을 것도, 사라진 것도 없다.
삶에 대하여 지키지 못한 약속도 때로는 남은 시간을 지키는 불빛이 되지 않던가.

창작과비평사와 고형렬 선배의 과분한 애정에 대해서 언제 한번쯤은 제대로 된 시적 예의를 차릴 수 있을 때가 올 것임을 나는 믿는다.

지향도 분명치 않은데, 이제 오래 머물렀던 곳을 떠나야겠다.

기우는 가을빛 속으로 웬 새가 날아간다.

2002년 시월 인천에서
박영근

시인의 시는 담담히 읽다가
왜 거기서 울컥 울음이 울어졌는지
꼭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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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

2009/11/16 17:33 from 서고/L을 위한 노래

이건 도대체가 생각을 못한 일이다.
그 너르고 깊던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싹 마를 수 있다는 건.
K는 망연자실, 강둑에 내려갈 생각도 못하고 길가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기 우째...!"
안그래도 불툭 불거져나온 입이 헤 벌어져 더욱 도드라졌다.

황강을 막아 합천댐을 세운다는 이야기가 돌 때만 해도
수몰되는 봉계리나 금봉리에 어디 조상이 쟁여둔 땅이 없나만 관심있었지
댐의 하류에 면한 쌍책의 황강 지류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정말이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K는 모래뻘에 내려가볼 생각으로 무릎을 짚어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그 곱던 하얀 모래밭은 잡초와 쓰레기로 우거져 옛모습을 가늠 할 수 없었다.
이러한 때에 이곳으로 향하게 한, 그의 선명한 기억이 아니었더라면, K는 이 곳이 강이었을 거라고,
이 곳에 쌍책과 초계리의 사람들을 모두 먹이고, 씻기고, 놀리고도 남을만큼 넉넉히
맑은 물이 흘렀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째.. 여까지..."

쌍책을 주름잡던 훈장 댁 막내아들이
요모양 요꼴로 폐가가 된 옛집을 찾을 만큼 시간이 흘렀고,
K도 그 시간을 살아오며 천지개벽은 별 일도 아닐만큼 세상이 변한다는 것도 터득했지만
이곳도 그 가차없는 시간을 겪어왔을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했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K는 생각했다.

'내가 늙은기가..허허'
꼼꼼하고 현실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가, 무방비 상태로 뒷통수를 한 대 제대로 맞은 것처럼 느낄만큼
쌍책의 시간을 생각지 못한 것을 늙음으로 탓하고는 있었지만, 그가 그렇게까지 거의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도 있었다.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황강의 동남부 지류에 맞닿은 곳
K의 고향인 이 곳은 워낙에 골짝이라 지금도 변변한 도로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가 태어났던 51년은 동란이 한창일 때였지만, 전쟁도 이 곳까지 손을 뻗진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가 군대를 갈 때까지도 K의 아버지의 서당에는 글 읽는 아이들이 복작거렸다. 
군에 복무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제대 후에는 곧장 서울로 직장을 잡은 K에게는 
그래서 이 곳은 시간이 멎어 주는 곳, 적어도 느릿느릿 양반 걸음을 해 줄 곳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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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차 -


□ 하이데거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 (121-122)

□ 시와 철학의 세 가지 관계 방식 (122-126)

 - 경쟁하기, 거리두기, 분류하기

□ 하이데거 사유 방법의 본질 (126-128)

□ 시와 철학의 새로운 관계 정립 (128-136)

 - 하이데거 이후의 시: 시의 새로운 자리

 - 철학의 임무: 철학에 합당한 자리 찾기

 - 철학은 왜 자신의 조건들에 불쾌함을 느끼는가

 - 시에 대한 철학의 처리 공정: 문학적인 것을 배치하기

□ 루크레티우스에게서 시와 철학의 관계: 새로운 관계 정립의 가능성 (136-139)

 -  루크티우스에게서 시가 나타나는 방식

 -  철학과 시 사이의 간격




하이데거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


[121.1] 모든 철학적 모험은, 개념의 수준에서 그 공가능성compossibility을 다루기 위해 자신의 시간적 조건들을 향해 돌아선다. 우리는 하이데거의 작업에서 이러한 돌아섬의 네 가지 양식들을 쉽게 분간할 수 있다.


1. 시간의 내밀한 엑-스타시ek-stasis에서, 실로, 변형을 가져오는 물음에 대한 고려를 통해 걸러진 것 같은 경험에서 발견되는 지지支持의 지점. 이는 『존재와 시간』에 대한 실존적-존재론적 분석이다.

2. 하이데거가 투쟁적으로 실천한 민족주의적-사회주의적 정치. 이는 단호한 결정의 독일적 발생으로, 땅, 노동, 공동체, 장소의 전유와 같은 범주들에 근거하여 기술 허무주의의 군림에 맞서는 사유의 독일적 발생으로서 여겨졌다.

3. 로고스와 짝을 이루는 '존재being'의 운명으로 생각되었던 철학사에 대한 해석학적이고 역사적인 재평가. 여기서 우리는 칸트와 헤겔, 니체와 라이프니츠에 대한 빛나는 분석들과, 그리스인들로부터, 특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부터 이끌어낸 교훈들을 볼 수 있다.

4. 1935년 이래, 횔덜린에 대한 강의에서부터 하이데거의 대화자로 특권지어진 위대한 독일의 시들.


[122.1] 이 네 번째 지지점은 나머지 세 가지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르네 샤르Réne Char부터 미셸 드기Michel Deguy2)에 이르는 시인들을 포함하여 프랑스의 하이데거 팬들은, 하이데거가 시적 언어에 숨겨져 있는 사유의 지점을 철학적으로 접촉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따라서 하이데거 철학의 힘을 넘어가고자 한다면, 시인의 말하기와 생각하는 자의 사유 쌍―그의 용어법에 따르면―을 반드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시와 철학적 추론의 엮임과 분리를 새롭게 정식화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시와 철학의 세 가지 관계 방식


[122.2] 우선, 하이데거에 따르면 원래 이 두 용어 사이에 구별이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유에서 로고스는 시적인 것 그 자체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와 헤라클레이토스의 금언들에서 볼 수 있듯이, 사유를 지키는 파수꾼이 바로 시이다.

[122.3] 바디우는 이 지점에 대해 일종의 공리적 논쟁을 함으로써 시와 철학 사이에 다른 관계 혹은 무관함의 재구축을 시작하고자 한다.

[122.4] 파르메니데스가 자신의 시를 여신의 부름에 이끌려 가는 것으로 두고, 전차를 타고 가는 이미지로 글을 시작할 때3), 우리는 아직 철학 안에 있지 않다. 내러티브와 계시에 대한 의존을 허용하는 진리는 여전히 신비에 사로잡혀 있는데, 철학은 신비의 베일을 찢고자하는 욕망을 통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123.1] 파르메니데스에게 시적 형식은 본질적이다. 시적 형식이 가지는 권위가 담론과 신성성이  인접성을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은 탈신성화 함으로써만 시작하며, 그 자신에 고유한 것이면서 지상의 정당화인 담론의 체제를 구축한다. 철학은 속화된 논변이 심원한 발화의 권위를 차단할 것을 요구한다.

[123.2] 바로 이러한 점에서 파르메니데스는 철학의 시작-직전을 이룬다.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을 사용하여 비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장면4)에서 특히 그러하다. 시 안에, 정합성의 자율적인 규칙rule of consistency에 대한 이러한 의존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지, 이야기의 신성한 권위와 진리 사이에 시가 조직한 결탁이 중단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23.3] 우리가 이를 수학의 추론적 특성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중단의 바탕에 수학소의 질서가 놓여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분명 귀류법 논증은 정합성에 근거하는 논변의 중요한 모태이며, 따라서 그것은 진술하는 주체의 내러티브나 비전秘傳적[비밀을 전하는] 지위에 기반하는 그 어떤 정당화와도 양립할 수 없다. 여기서 수학소는 이야기하는 자를 사라지게 하고, 그 장소에서 모든 신비한 정당화 형태를 제거하면서, 논변을 자율성의 시험에, 즉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비판적 혹은 대화적 검토에 부친다. 

[123.4] 그리스에서만 수학소가 내러티브에 의한 정당화의 신성한 실행을 중단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에서 철학이 시작되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러한 중단의 순간-직전―여전히 신성한 내러티브 안에 있고, 시적 포획 안에 있는 순간―을 나타낸다.

 

[124.1] 플라톤이 시를 연상하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고찰을 체계적인 불신에 밀어붙이면서, 이러한 중단을 명명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우리에게 철학의 가능성을 구성하는 이 중단의 몸짓을 철저하게 분석할 것을 제안했다.

- 시의 모방적 포획, 개념이 결여된 유혹, 이데아 없는 정당화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철학의 왕권이 작동하는 공간에서 제거되고 금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단절은 고통스럽고 지난한 것이겠지만(국가 10권을 보라) 이는 철학의 방식 뿐 아니라 철학의 실존existence과 관련된 문제이다.

- 진리의 탈신성화와 탈 시화de-poeticization에서 수학이 하는 역할을 보았을 때, 교육학적으로는 정치교육에서 정수론과 기하학에 결정적 위치를 부여하고, 존재론적으로는 수학을 궁극적 변증법의 전개에 이르는 대기실로 만드는 지적존엄을 부여함으로써, 수학을 명시적으로 승인해야만 한다.


[124.2] 설명 기술이 가장 시적이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반면 플라톤은 자신이 배제한 것의 매혹에 빠질 여지가 항상 있었다. 그 자신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시는 앎Knowledge의 처리에 내맡겨진 하나의 개별 대상일 뿐이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플라톤이 수학에 부여했던 모든 존재론적 존엄성의 속성들을 박탈한다. ‘시학’은 철학 행위의 분과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철학을 정초하는 논쟁들이 완결되고, 자신의 부분들의 접합구조에서 안정화된 철학은 더 이상 자신을 조건짓는 것들에 극적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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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순덕한 호랭이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