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의 내밀한 엑-스타시ek-stasis에서, 실로, 변형을 가져오는 물음에 대한 고려를 통해 걸러진 것 같은 경험에서 발견되는 지지支持의 지점. 이는 『존재와 시간』에 대한 실존적-존재론적 분석이다.
2. 하이데거가 투쟁적으로 실천한 민족주의적-사회주의적 정치. 이는 단호한 결정의 독일적 발생으로, 땅, 노동, 공동체, 장소의 전유와 같은 범주들에 근거하여 기술 허무주의의 군림에 맞서는 사유의 독일적 발생으로서 여겨졌다.
3. 로고스와 짝을 이루는 '존재being'의 운명으로 생각되었던 철학사에 대한 해석학적이고 역사적인 재평가. 여기서 우리는 칸트와 헤겔, 니체와 라이프니츠에 대한 빛나는 분석들과, 그리스인들로부터, 특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부터 이끌어낸 교훈들을 볼 수 있다.
4. 1935년 이래, 횔덜린에 대한 강의에서부터 하이데거의 대화자로 특권지어진 위대한 독일의 시들.
[123.1] 파르메니데스에게 시적 형식은 본질적이다. 시적 형식이 가지는 권위가 담론과 신성성이 인접성을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은 탈신성화 함으로써만 시작하며, 그 자신에 고유한 것이면서 지상의 정당화인 담론의 체제를 구축한다. 철학은 속화된 논변이 심원한 발화의 권위를 차단할 것을 요구한다.
[123.3] 우리가 이를 수학의 추론적 특성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중단의 바탕에 수학소의 질서가 놓여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분명 귀류법 논증은 정합성에 근거하는 논변의 중요한 모태이며, 따라서 그것은 진술하는 주체의 내러티브나 비전秘傳적[비밀을 전하는] 지위에 기반하는 그 어떤 정당화와도 양립할 수 없다. 여기서 수학소는 이야기하는 자를 사라지게 하고, 그 장소에서 모든 신비한 정당화 형태를 제거하면서, 논변을 자율성의 시험에, 즉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비판적 혹은 대화적 검토에 부친다.
[123.4] 그리스에서만 수학소가 내러티브에 의한 정당화의 신성한 실행을 중단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에서 철학이 시작되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러한 중단의 순간-직전―여전히 신성한 내러티브 안에 있고, 시적 포획 안에 있는 순간―을 나타낸다.
[124.1] 플라톤이 시를 연상하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고찰을 체계적인 불신에 밀어붙이면서, 이러한 중단을 명명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우리에게 철학의 가능성을 구성하는 이 중단의 몸짓을 철저하게 분석할 것을 제안했다.
- 시의 모방적 포획, 개념이 결여된 유혹, 이데아 없는 정당화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철학의 왕권이 작동하는 공간에서 제거되고 금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단절은 고통스럽고 지난한 것이겠지만(국가 10권을 보라) 이는 철학의 방식 뿐 아니라 철학의 실존existence과 관련된 문제이다.
[124.2] 설명 기술이 가장 시적이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반면 플라톤은 자신이 배제한 것의 매혹에 빠질 여지가 항상 있었다. 그 자신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시는 앎Knowledge의 처리에 내맡겨진 하나의 개별 대상일 뿐이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플라톤이 수학에 부여했던 모든 존재론적 존엄성의 속성들을 박탈한다. ‘시학’은 철학 행위의 분과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철학을 정초하는 논쟁들이 완결되고, 자신의 부분들의 접합구조에서 안정화된 철학은 더 이상 자신을 조건짓는 것들에 극적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경쟁하기, 거리두기, 분류하기
[124.3] 이처럼, 일찍이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과 시 사이에 가능한 세 가지 관계체제가 발생하였고 명명되었다.
[125.1] 파르메니데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체제는 시의 주체의 권위와 철학적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발화의 타당성 사이의 융합을 만들어냈다. ‘수학적’이라고 할 만한 중단들이 이 융합에 나타날 때에도, 이 중단들은 궁극적으로 발화의 신성한 아우라에, ‘심원한’ 가치에, 언명의 정당성에 종속되어 있다. 이미지, 언어의 다의성, 은유 전체가 진리the True 말하기에 권위를 부여하고 호위해준다. 진실성은 언어의 살 속에 거주한다.
[125.2] 플라톤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째 체제는 시와 철학 사이에 거리를 두는 효과를 낳았다. 시는 소모적 매혹으로, 진리에 어긋나는[비스듬한] 유혹으로 고립되고, 철학은 자신이 다루는 것을 시가 철학 대신 다루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시적 은유의 특권에서 벗어나는 것은, 언어 자체에 맞서 수학의 문자적 일의성에서 그 기초를 발견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철학은 철학을 구성하는 최초의 조건들인 시와 수학소(철학이 시의 권위를 중단시켜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학소의 존엄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를 대조시킴으로써만 스스로를 구축할 수 있다. 시에 대한 플라톤적 관계는 조건에 대한 (부정적) 관계라고, 즉 다른 조건들(수학소, 정치, 사랑)을 전제하는 그러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125.3]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세 번째 체제는, 앎의 유들에 대한 앎Knowledge of the kinds of knowledge으로 표현될 수 있는 철학이 시에 대한 앎을 포함하게 만들었다. 시는 더 이상 거리두기 혹은 내밀한 인접성의 극drama 안에서 생각되지 않았다. 시는 대상의 범주를 통해서, 즉 철학의 한 분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통해서 파악되었다. 시의 국지성은 후에 미학이 될 바를 정초지었다.
[125.4] (사유로서의) 철학이 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관계를, [시와 철학을] 동일시하면서 경쟁하기, 논쟁의 거리두기, 미학의 국지화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철학은 시를 시기하고, 두 번째에서 그것을 배제하며, 세 번째에서 그것을 분류한다.
하이데거 사유 방법의 본질
이 세 단계의 전개와 관련해서 볼 때 하이데거적 사유 방법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디우는 이를 세 가지 요소로 도식화한다.
[126.3] 1. 하이데거는 매우 정당하게도, 시의 자율적인 사유 기능을 재확립했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사유하는 자의 구상과 시인의 말하기가 공유하고 있는 운명의 공통성을 인식할 수 있는 장소―장소 자체는 인적이 드물고 찾기 어려운―를 규정하고자 하였다. 운명의 공통성에 대한 그의 밑그림은 세 번째 유형의 관계와 본질적으로 대조된다. 하이데거는 철학적 앎으로부터 시를 빼와서 진리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시를 철학의 한 부문으로 이해하는 모든 미학, 모든 규정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기초를 세웠다. 이러한 기초는 근대성의 특성들에 꼭 맞는 것이었다(근대가 비-아리스토텔레스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126.4] 2. 하이데거는 철학적 논변에 대한 시의 거리만이 조명되는 조건 관계의 한계들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매우 정밀한 몇몇 분석들에서 그는 횔덜린 이래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시가 본질적인 철학적 주제들의 주위에 모여들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주되게는, 이 기간 동안 철학이 과학(실증주의) 혹은 정치(맑스주의)의 노예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은 자신의 존재의 이 특정한 조건들[정치, 과학]에 관한 자신만의 법칙을 수립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나는 이 기간을 ‘시인들의 시대’라고 부를 것을 제안했다. 하이데거는 전적으로 독창적인 철학적 수단들을 이 시대에 부여하면서, 플라톤적 추방의 공정을 사용하여 시에 대한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고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때로 철학은 보다 더 위험한 방식으로 시에 자기 자신을 열어젖혀야만 한다. 철학은 시가 시간의 진리truth of Time를 기록하는 연산들operations을 제 나름대로 사유해야만 한다(지금 논의되고 있는 시기 동안 시적으로 실현된 주된 진리는 존재론적 현시presentation의 필수적인 형태로서의 대상성 범주의 폐기였다. 이것은 말라르메의 작품에서와 같이 그것[현존]이 고립이나 빼냄처럼 역전된 형태로 나타났을 때조차도, 현존이라는 주제가 시의 결정적인 특징이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127.1] 3. 역사적 몽타주에서, 그리고 특히 그리스 철학의 기원에 대한 평가에서 하이데거가 수학소에 대한 의존이라는 그 자체로 기원적인 성격을 확인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불행히도 그는 중단에 대한 판단을 철회하고, 그 결과 미묘하고 다양한 철학적 이름들을 이용하여 시적 발화의 신성한 권위와 ‘진정한 것’이 언어의 살 속에 거주한다는 관념을 복구시켰다.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를, 존재가 드러나는 망각 이전의 장소를 설정해준 것으로 파악하고 이들에게 기대는 것과, 그의 시 분석 중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은 트라클Trakl5)에 대한 분석6) 속에서 나타나는 신성한 것에 대한 그의 육중하고 불합리한 의존 사이에는 통일성이 있다. 이데아의 수학적 의미의 참된 본성에 대한 하이데거의 오해는 철학자와 시 사이에 제4의 관계―융합적이지도, 경원하지도, 미학적이지도 않은 그러한 관계―를 고안해내는 대신, 하이데거로 하여금 시인의 말하기와 사유하는 자의 사유를 불가해하게 짝지으면서 신성한 것의 부활을 공허히 예언하게 하였다.
시와 철학의 새로운 관계 정립
[128.1] 바디우는 하이데거로부터, 철학적 미학에 대한 가치절하와 플라톤적 배제 공정의 효과에 대한 비판적 한계설정은 존속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철학이 종언을 맞이할 조건들 속에 있고, 이러한 종말은 시의 권위에 봉합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의를 제기한다. 철학은 실증주의가 소진되고, 맑스주의의 골자가 적출된 까닭에 지속된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시 또한 우리에게 자신을 철학의 경쟁자로 동일시하면서 지운 모든 짐을 내리라고, 시의 말하기와 철학자의 사유를 짝지어 묶은 잘못된 끈을 풀라고 명령하는 한 철학은 계속된다. 수학소가 애초에 기입한 존재론적 빼냄을 잊고 있는 말하기와 사유하기 쌍은 실상 철학의 종말에 대한 설교와 진정성에 대한 낭만주의적 신화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 이후의 시: 시의 새로운 자리
[128.2] 철학이 계속된다는 사실은 진리의 특이적 연산singular operation인 시를 자유롭게 한다. [그렇다면] 하이데거 이후의, 즉 시인들의 시대 이후의 시는 무엇이 될 것인가? 다시 말해 포스트 낭만주의의 시는 어떠할 것인가? 시인들이 우리에게 이를 말해줄 것이며, 실은 이미 말해왔다. 철학과 시의 봉합을 풀면서도 미학으로의 회귀 없이 하이데거를 떠나기 위해서는, 시가 그로부터 나아가는 출발점을 신화 속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연산적 거리operative distance 속에서 사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만을 지적하자.
[128.4] 1. 말라르메가 ‘대상에 대한 관념을 가지는 순간은 대상의 순수한 현존적인 것 그 자체 혹은 현존적 순수성 그 자체에 대해 성찰하는 순간이다’라고 썼을 때, 시가 관념의 생산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는 시에 대한 어떤 프로그램의 윤곽을 그렸던 것일까? 여기서 핵심은 언어에 내재하는 어떤 연산―분리와 고립의 연산들―이 ‘현존적 순수성’을 분출시킬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현존적 순수성은, 실재에 대해 더 이상 어떠한 현시가능한 연결도 가지고 있지 않는 한에서 현존적인 것의 차가움이다. 시야말로 현존적인 것의 현존에 대한 사유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시는, 순수한 현존이 아니라 시간Time의 공가능성을 다루는 철학과 경쟁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오직 시만이 장소 바깥, 혹은 모든 장소 너머를 사유할 수 있는 수단을 수집하고, 현존적인 것이 실재로 환원되는 것에 저항하는 ‘어떤 텅 빈 그리고 우월한 표면’에서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들을 그러모아주며, 현존적인 것의 현존, 즉 수학소와 모순된다기보다 ‘다른 것일 수 없는 유일한 숫자’를 함축하는 현존의 영원성―‘망각과 폐기로 얼음장 같은 성좌’―을 소환할 수단을 마련해준다.
[129.1] 2. 첼란Celan7)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때,
Wurfscheibe, mit
Vorgesichten besternt
wirf dich
aus dir hinaus
이것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는데
예견들이 별자리를 이뤄 빛나는
원반,
너를 던져라
너 자신 밖으로
[130.1] 이러한 암시의 내밀함intimacy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상황이 자기 자신의 규범으로 가득 찼을 때, 상황의 자기 계산이 규범 속에 집요하게 기입될 때, 앎과 예언 사이에 아무런 공백도 존재하지 않을 때, 자신의 바깥을 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내가 사건에 부여한 의미에 따르면, 사건의 명명은 결정불가능한 보충으로서, 신실함, 따라서 진리를 발생시키기 위한 명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름붙이기는 언제나 시적이다. 잉여, 우연, 계산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의미의 공백으로부터, 확립된 의미작용의 부재 속에서, 언어에 위협이 되는 [이름을] 이끌어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시적이어야 한다. 사건의 시적 이름은 예언들로 불타고 있는 고리를 가로질러 우리를 우리 자신의 바깥으로 내던지는 것이다.
[130.2] 철학적 시 되기에서 해방된 시는 항상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유, 두 가지 선물 안에 놓여 있다. 실재들을 꿰뚫는 현존적인 것의 현존, 계산가능한 이해들 바깥으로 도약하는 사건에 대한 명명.
철학의 임무: 철학에 합당한 자리 찾기
[130.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철학자들은, 철학의 해석학적 관심이 시에 부과하는 모든 것을 넘어서서 시의 미래를 돌보는 일을 시인들에게 맡겨두어야만 한다. 철학의 관점에서 우리의 특유한singular 임무는 시와 철학의 관계 맺음 혹은 분리를 재사유하는 것이다. 철학에 속하는 사유 행위와 양식에서, 처음부터 시, 수학소, 정치, 사랑이라는 조건 위에 정초된 그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131.1] 근대인들 특히 탈근대인들은 시, 문학, 실로 예술 일반이 우리의 근대성을 증언하는 구체적 방식들에 의해 철학이 입었다고 추정되는 부상을 잘 드러내어 보여주었다. 예술은 항상 개념에 대한 도전을 표현해왔다. 이러한 도전과 부상에 근거해서 우리는, 플라톤적 제스처를 철학의 권위를 수립하기 위해 시를 추방해야 하는 철학의 필요로 해석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131.2] 플라톤적 제스처가 특별히 시 혹은 문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은 철학적 사랑, philo-sophia를 대상에 대한 욕망의 불안에 사로잡힌 현실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놓아야 했다. 그는 또한 politeia라는 철학적 개념을 벼리기 위해 아테네의 실제 민주주의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수학적 추론dianoia과 변증법의 거리를, 그리고 변증법의 우월함을 단언해야만 했다. 시, 수학소, 정치, 사랑―이 모두는 철학을 조건지음과 동시에 철학을 공격한다. 조건과 공격: 사태는 이러하다.
[131.3] 철학은 언어가 특권 혹은 모방에의 자극, 이미지, 허구, 내러티브를 박탈당한 채 사유에 내맡겨지는 바로 그 지점, 이 마이너스의subtractive 지점에 수립되고자 하고, 또 그래야 한다. 여기서 사랑의 강렬성 원리는 대상의 타자성과 유리되고 동일자의 법칙에 의해 뒷받침되며, 수학의 공리와 가정들이 내포하는 맹목적 폭력은 원리의 섬광이 잠재운다. 또한 집단적인 것the collective은 정치 상황의 초과적 실재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상징 안에서 드러난다.
철학은 왜 자신의 조건들에 불쾌함을 느끼는가
[132.1] 철학은 예술, 과학, 정치, 사랑의 조건들 아래에 있다. 그러나 철학은 항상 자신의 조건들의 사건적, 특이적 성격에 의해 부식당하고, 부상당하고, 침식된다. 이 우발적인 사건occurrence은 철학을 전혀 기쁘게 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132.2] 자신의 조건들의 실재에 대한 철학의 불쾌함을 설명하는 것은 철학적 처리disposition의 핵심에 진리와 의미sense의 구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견지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철학이 단지 자신의 조건들을 해석하기만 해야 한다면, 철학은 자신의 조건들을 향해 몸을 돌려 시 작품, 수학적 정리, 사랑의 만남, 정치적 혁명에서 일어나는 것의 의미는 이러하다라고 끝없이 말하는 것으로부터 기쁨을 느낄 것이다. 철학은 그렇다면 미학, 인식론, 사랑학, 정치사회학의 잔잔한 총합일 것이다. 이러한 유혹은 매우 오래 된 것이며, 누군가가 그 유혹에 굴복하면, 철학은 라깡이 대학의 담론이라고 부른 것의 한 부문에 위치지어진다.
[132.3] 하지만 ‘철학’은 이러한 총합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날 때 시작된다. 더 이상 진리가 거하는 실재적 공정을 해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공정들의 동시대적 조건들 하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진리가 의미가 아닌 의미의 구멍인지를 언급하는 독특한 장소를 정초하는 것이 문제일 때 철학은 비로소 시작한다. 조건들 아래에서 사유하기 위한 장소의 토대인 이 ‘어떻게’와 ‘왜’는 해석학과 주어진 것에 대한 거부와 연관된 [철학의] 불쾌함 안에서만 실천적일 수 있다. 이것들은 의미의 주어짐에 대한 원천적인 변절, 의미의 부재, 의미 버리기를 요구한다. 혹은 다시 말하면 일종의 버릇없음을 필요로 한다. ‘어떻게’와 ‘왜’는 진리 공정이, 자신을 실재 안에 엮어짜넣고 실재를 가로지르고 그것을 파내는 방식으로 의미에 묶어두는 사건적 특이성으로부터 빼내어져야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어떻게’와 ‘왜’는 진리 공정이 자신의 주관의 호위와 그것이 제공하는 대상에 대한 쾌감으로부터 절연할 것을 요청한다.
[133.1] 그러므로
- 철학은 성별화된 둘, 둘 그 자체에서 부화하는 진리에 따라서만 사랑을 파악할 것이다. 사랑의 대상에 의해 계속해서 작용하는 기쁨-노여움의 긴장 없이.
- 철학은 정치를 집단의 상황들의 무한의 진리로, 이러한 무한함의 진리를 다루는 것으로 파악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 자체에 대한 열정이나 숭고화 없이.
- 철학은 수학을 문자 안에서, 그리고 문자를 통해서 존재하는 다수적 존재의 진리로, 문자화의 힘으로 파악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지적 지복을 느낌이 없이.
- 마지막으로 철학은 시를 리듬과 이미지 안에 머무르는 지각가능한 현존의 진리로 파악할 것이다. 리듬과 이미지에 육체적으로corporeal 포획됨이 없이.
[133.4] 시 등의 조건들에 대한 철학의 구성적 불쾌감은, 진리가 앎의 의미 만들기에 구멍으로 발생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결정되는 기쁨을 (의미와 함께) 폐기해야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시에 대한 철학의 처리 공정: 문학적인 것을 배치하기
[133.5] 시가 그 정수인, 문학적 행위의 개별적 경우와 관련해서, 이러한 [철학의] 처리 공정―항상 공격받기 쉽고 다루기 힘든―은 무엇인가?
[133.6] 철학이 언어의 결과이기 때문에 관계는 더욱 더 밀접하다. 문학적인 것은 철학에게 허구, 비유, 이미지, 리듬, 내러티브로 명기된다.
[133.7] [철학의] 처리는 여기서 배치의 형상을 취한다.
[133.8] 분명 철학은 서술의 짜임새 안에서 허구적 의인화incarnations를 사용한다. 우리는 플라톤 대화편들의 인물들과 그들의 우연한 만남이 연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혹은 말브랑슈가 기독교 철학자와 가상의(있음직하지 않은) 중국 철학자 사이의 대화를 그렸던 것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의 서사시적, 소설적 특이성도 떠올릴 수 있겠다.
[134.1] 철학은 이미지, 비유, 리듬을 활용한다. 태양의 이미지는 좋음의 이데아 안에 본질적으로 은거해 있는 어떤 현존을 드러내는 데 복무한다. 또한 운율과 두운으로 충만한, 라이프니츠 『단자론』의 경이로운 67번째 문단을 누가 모르겠는가? ‘물질의 각 부분은 식물들이 들어찬 정원으로, 물고기로 가득한 연못으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물의 모든 가지, 동물의 모든 개체, 그들의 영靈의 한 방울은 또다시 그러한 정원 혹은 그러한 연못이다’
[134.2] 철학은 내러티브와 우화 또한 활용한다. 플라톤은 에르 여신의 신화로 『국가』를 끝맺는다. 헤겔의 『역사철학』은 ‘동양’, ‘그리스’, ‘로마’라는 이름의 주인공들[주된 주체적 실체들]의 이야기이자, 많은 점에서 기념비적인 내러티브이다.
[134.3] 그러나 문학적인 것의 이러한 등장은 그것이 구성하지 않는 사유 원리의 관할 하에 있다. 문학적인 것의 출현은 어떻게 그리고 왜 진리가 의미에 구멍을 내고, 해석을 빠져나가는지가 설명되는 장소의 수립을 완결짓기 위해, 설명의 역설에 따라 우화, 이미지, 허구적 이야기를 해석 그 자체에 제시할 필요가 있는 지점에 국한된다.
[135.1] 철학은 자신을 조건짓는 진리 공정들 안에서, 진리 그 자체를 입증하기 위해 의미의 아우라로부터, 모든 떨림과 모든 파토스들로부터 빠져나온다. 그러나 철학이 모든 의미의 근본적인 밑바닥으로, 모든 가능한 현시의 공백 속으로, 바닥없는 구멍처럼 진리의 홈파임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진리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철학이 불가피하게 이들을 마주치는 것과 같이, 공백과 의미 부재가 그들 스스로 현시되고 전달되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135.2] 시는 다음과 같은 때에 철학에 나타난다. 보편적으로 말하려는 의지와 자신이 계발한 모든 장소가 완전히 점거되도록 만들고자 하는 사명을 가진 철학이, 모든 진리를 그것에 대해 [철학이] 진리인 바의 것의 존재에 봉합하는 잠복적 공백을 의미와 해석에 제시하라는 명령을 받을 때에. 현시할 수 없는 공백을 언어에 현시하는 것은 문학적 자원들의 배치를 필요로 한다. 단 이러한 배치가 바로 이 지점에서 수행된다는 조건 하에서. 따라서 완전히 다른 방식―논증, 개념적 접근, 이데아의 방식―의 전반적인 관할 하에서.
[135.3] 시는 철학의 지점들 중 단 하나의 지점에서만 일어난다. 이러한 국지화는 시적 혹은 문학적 원리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 이는 현시할 수 없는 것을 논변이 위치짓는 순간[이 언제인지]에, 논변이 규정한 비틀림으로 인해 진리[인 것]의 연산의 적나라한 상태가 의미의 기쁨으로 항상 부적절하게 회귀함으로써만 전달될 수 있는 순간에 달려있다. 철학에서 문학적인 것은 의미에 대한 진리의 관계가 결함있는 텅 빈 관계라는 사실을 전달한다. 철학을 국지화된 허구에 노출되게끔 강요하는 것은 바로 이 결함/결여이다. 논변이 실패하는 그 순간은 논변과정 자체의 힘 속에서, 진리가 앎을 실패하게 한다는 것을 모방한다.
루크레티우스에게서 시와 철학의 관계: 새로운 관계 정립의 가능성
[136.1] 이런 조건들 속에서 가장 저명한 철학적 시가 공백the Void 그 자체를 불굴의 유물론의 원천적 원리로 삼은 저자의 것이라는 점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물론 루크레티우스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루크레티우스에게 모든 진리는 비처럼 쏟아지는 글자들로부터 기호들을 조합하는 것으로, 순수하게 현시불가능한 것 즉 공백[진공] 안에 원자들을 조합하는 것으로 성립된다. [루크레티우스의]철학이야말로 의미에서 빠져나온 것이며, 해석의 즐거움에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다. 철학을 하이데거적 형이상학 도식에 통합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하는 것 또한 [이러한] 철학이다. [그의] 철학은 전혀 존재-신학적이지 않다. 루크레티우스에게 최상의 존재Supreme Being는 없고, 하늘은 비어 있으며 신들은 무심하다. 위대한 시인이기도 한 이 유일무이한 사상가가 하이데거의 역사적 아쌍블라쥬를 머뭇거리게 하고, 존재의 역사로 하여금 (하이데거가 우리에게 플라톤 이후의 형이상학에 관해 이야기 한 바에 완전히 이질적인) 산포된 복수성을 통과해 가도록 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지 않은가? 역사에 유일한, 시와 철학의 이러한 특이한 융합이 하이데거가 시와 사유 사이의 상관관계를 사고했던 도식에 완전히 이질적이라는 것은 징후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러한 유물론, 즉 상상적인 것의 폐위를 향해 완전히 정향되어 있고, 분석되지 않은 현존의 효과에 적대적인 중립적 사유는 그 자신을 현시하기 위해 시의 특권이 필요하다.
루크티우스에게서 시가 나타나는 방식
[136.2] 루크레티우스는 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지탱하는데, 그가 그렇게 한 이유를 보면, 플라톤적 방식으로 시를 축출하는 데 그가 가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루크레티우스의 유일한 원리가 물질의 산포인데, 그것은 신성한 유대의 가장 발본적인 변절을 참이 입증되는 장소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137.1] ‘다수 존재의 실재에 대하여’라고 옮겨야 할 ‘De rerum natura’ 4권의 앞부분에서 루크레티우스는 시가 자신의 철학을 서술하는 필수항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데 착수했다. 그의 논거는 무엇인가? 세 가지 주된 논거는 다음과 같다.
[137.2] 첫째, 루크레티우스가 말하길, 이 책은 ‘모호한 사물’을 다루며, 존재의 이러한 모호함은 언어 안에서 그리고 언어가 발하는 빛, 시의 빛나는 어구를 필요로 한다. ‘obscura de re tam lucida pango carmina’.
[137.3] 다음으로, 루크레티우스는 종교의 단단한 끈으로부터 정신을 풀어주는 데 착수한다. 그러한 풀어줌, 종교에 넘쳐흐르는 의미로부터의 이러한 빼냄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뮤즈의 은총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내리는 말하기의 힘, 일종의 특권이다.
[137.4] 마지막으로, 자신의 장소를 점하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의 벌거벗은 진리는 본질적으로 슬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철학의 장소, 진리를 입증하는 장소는 멀리서 보았을 때, 멜랑꼴리하다. 기쁨의 폐위는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기쁨, 루크레티우스가 말하길 ‘달콤한 시의 꿀’로 입힌 기쁨으로 지탱되어야 한다.
[137.5] 따라서 이번에 시는 철학적 서술 전체를, 장소의 보편적 점거를 위한 모든 철학적 말건네기를 재개하기 위해 나타난다. 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령 아래에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멀리서 바라본 혹은 루크레티우스에 따르면 ‘아직 실천되지 않은’ 진리의 우울함. 의미로부터의 해방 혹은 빼냄. 이는 종교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의 찬란한 언어적 몸이 발하는 빛을 통한 전달 내부에 발생하는 모호함―현시되지 않는 공백이 이 모호함의 핵심이다―에 대한 명령.
철학과 시 사이의 간격
[138.1] 그러나 이러한 명령들 속에서 철학과 시 사이의 확고한 틈을 유지하는 어떤 것이 존속한다. 언어와 시구의 매혹이 차지하는 위치는 순전히 부가적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시구는 전달되고자 하는 철학의 의지를 호위한다. 이들은 따라서 항상 그리고 영원히 국지화되고, 미리 규정된다. 이러한 안案의 실재적 법칙은, 루크레티우스가 [철학을] 에피쿠로스로부터 물려받은 것처럼 합리적이고 구성적인 논변이다. 루크레티우스는 그가 말을 건네려는 자에게, 멀리서 바라본 진리의 슬픔이 가까이서 바라보면 존재의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것을 납득할 필요가 있는 자에게 왜 그가 시에 대해 의존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거의 변명에 가깝다―한다. 에피쿠로스에 대해서는,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정당화가 아니라 순전한 찬양일 뿐이다. 시는 변명되어야 하고, 논변은 찬양받아야 한다. 틈은 본질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138.2] 그 이유는 이러하다. 시는 언어 속의 명령으로 드러나고, 그러면서 진리를 생산한다. 결코 철학이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진리를 전제하고, 각 진리에 고유한 의미로부터의 분리 체제를 따라 진리를 빼내는 방식으로 분배한다. 철학은 자신이 틀짓고 경계지어준 논변이 견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이러한 분리가 보여주어야 할 때, 그런데 철학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바의 것, 즉 진리 공정의 현실적 특이성, 의미의 웅덩이, 의미의 겹들, 의미의 샘 안에 담겨 있는 특이성으로 논변을 회귀시킴으로써만 [그 논변의 타당성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자신의 목적을 시에게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139.1] 시는 그 자신 또한 말해야 할 때 철학에 의해 소환된다. 루크레티우스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나는 아무도 찾지 않았고, 이전에 누구도 발 들여놓은 적 없는 피에리데스Pierides8) 땅의 장소들을 여행한다, 나는 그 순결한 샘에 가, 물을 긷고 싶다.’
[139.2] 시는 논변이 행해지고, 행해져왔고, 행해져야 할 빈 페이지의 순간을 표시하기 위해 온다. 이 공백, 이 빈 페이지는 ‘모두 사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시는 엄밀하게 한정된 시적 표식 아래에서, 적어도 하나의 진리가 다른 곳에 하지만 실제로 실존한다는 것을 철학 안에서 말하는 방식이며, 이러한 관찰로부터, 진리를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우울함에 대항하여 가장 즐거운 결론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이다.
1) (한글본) 『조건들』 알랭 바디우 씀, 이종영 옮김, 새물결 2006
(영어본) CONDITIONS, trans. by Steven Corcoran, continuum 2008 참조.
2) 프랑스의 현대 시인들이자, 대표적인 하이데거주의자들이다.
3) POEM OF PARMENIDES 일부, trans. John Burnet (1892)
[Ⅰ] The steeds that bear me carried me as far as ever my heart
Desired, since they brought me and set me on the renowned
Way of the goddess, who with her own hands conducts the man
who knows through all things. On what way was I borne
along; for on it did the wise steeds carry me, drawing my car,
and maidens showed the way. And the axle, glowing in the socket -
for it was urged round by the whirling wheels at each
end - gave forth a sound as of a pipe, when the daughters of the
Sun, hasting to convey me into the light, threw back their veils
(하략)
전문은 http://philoctetes.free.fr/parmenidesunicode.htm에서 볼 수 있다.
4) 같은 글.
[II] Come now, I will tell thee - and do thou hearken to my
saying and carry it away - the only two ways of search that
can be thought of. The first, namely, that It is, and that it is
impossible for anything not to be, is the way of. conviction,
for truth is its companion.. The other, namely, that It is not,
and that something must needs not be, - that, I tell thee, is a
wholly untrustworthy path. For you cannot know what is
not - that is impossible - nor utter it;
[III] For it is the same thing that can be thought and that can be.
[VI] It needs must be that what can be thought and spoken of is;
for it is possible for it to be, and it is not possible for, what is
nothing to be. This is what I bid thee ponder. I hold thee
back from this first way of inquiry, and from this other also,
upon which mortals knowing naught wander in two minds; for
hesitation guides the wandering thought in their breasts, so that
they are borne along stupefied like men deaf and blind.
Undiscerning crowds, in whose eyes the same thing and not the
same is and is not, and all things travel in opposite directions !
[VII] For this shall never be proved, that the things that are not
are; and do thou restrain thy thought from this way of inquiry.
Nor let habit force thee to cast a wandering eye upon this
devious track, or to turn thither thy resounding ear or thy
tongue; but do thou judge the subtle refutation of their
discourse uttered by me.
5) Georg Trakl: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빈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일찍부터 문학과 마약을 알게 되어 여러 번 약제사로서의 직업을 가졌으나 오래 가지 못하였다. 그의 뛰어난 시는 1912년 이후에 발표되어 작품량은 많지 않으나, 표현하기 어려운 매혹에 충만되어 있다. 시인 자신을 위협하는 착란과 죽음, 세계의 제지할 길 없는 붕괴를 날카롭게 감지하고, 그 우수(憂愁)를 부드러우며 색채 풍부한 이미지로, 나중에는 준엄한 불길과도 같은 절망을 시구(詩句)에 담아 되풀이하여 노래하였다. 그의 세계는 멸망을 불러들이는 죄와 그에 대한 속죄를 정신적인 지주로 하는데, 여동생 마르가레테의 역할이 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 중 육군병원 정신병동에 입원 후 갑자기 사망하였는데, 격전의 비참을 체험하고 자살한 것이라고도 전한다. 생전에 《시집 Gedichte》(1913)이 출판되었고, 제2시집 《꿈속의 세바스티안 Sebastian im Traum》(1915)은 사후에 출판되었다. 트라클의 시 전문을 http://www.literaturnische.de/Trakl/english/index-trakl-e.htm에서 볼 수 있다.
6) 박유정, 「하이데거의 트라클 시에 대한 해석」, 철학과 현상학 연구 제32집, 한국현상학회, 2007. 2
“하이데거는 『언어의 도상』의 「시에서의 언어」에서 트라클 시에 대한 해석을 한다. 트라클의 시 〈영혼의 봄〉의 한 구절, 즉 “영혼은 지상의 나그네 이다”를 가지고 영혼이 겪는 존재사건의 도정을 추적한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영혼이 존재를 찾아 떠나는 한에서 영적이고, 그런 한에서 정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푸른 들짐승”이라고 규정한다. 푸른 들짐승인 영혼은 그 “푸름”이라는 색채가 보여주듯이 밝음과 어둠 양자를 함축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고, 그로써 그것은 영적인 죽음을 감행할 수 있는 “세상을 등진 사람”이다. 세상을 등진 사람은 존재의 죽음을 감행할 수 있는 까닭에 영적인 정신을 지닐 수 있고, 그로써 그는 황금빛 얼굴의 엘리스, 즉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후손이며, 그의 죽음에의 여행은 금빛 거룻배를 타고 수레국화다발을 지나 존재의 그윽한 장소로 데려다 준다. 이 그윽한 장소가 곧 시작과 사유가 공속하는 존재의 장소인 것이다. 이러한 장소의 본질, 즉 장소의 장소성을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로 어떠한 설명도, 명증도 아닌 ‘자리밝힘’(erortern)이고, 그러한 자리밝힘의 사유인 것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의 자리를 자리밝히는 데서 시작과 사유의 근원이 되는 언어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의 자리밝힘은 존재에 대한 사유이다. 자리밝힘이 이렇게 존재사유이기 때문에 그것은 대상에 대한 근거율을 추구하는 ‘설명적 밝힘’(erklären)도 아니고, 그러한 근거의 사태 자체의 드러남을 기술하는 ‘명증적 밝힘’(erläutern)도 아니다. 전통형이상학이 설명적 밝힘의 방법론을 사용하였다면, 그러한 존재-신론적 형이상학의 한계를 현상학은 명증적 밝힘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의식주관의 선험적 관념론에서 명증적으로 자명한 사태자체라는 개념으로는 자신의 존재론적 기반까지 기술할 수 없었기에, 현상학의 명증적 밝힘은 자리밝힘의 사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이데거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존재의 자리를 주목하는 이러한 자리밝힘에서 비로소 우리의 존재이해 속에 있는 존재가 자신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리밝힘의 사유에서 존재는 자신의 장소를 역사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의 트라클 시론은 단순한 문학론이나 문학 비평을 넘어서 기존의 형이상학적 사유에 대한 도전이고 그 극복에 대한 고뇌이며, 나아가 새로운 존재론에 대한 치열한 모색이며 그 방향 제시였다고 할 수 있다.”
7) Paul Celan: 본명 파울 안트스켈(Paul Antschel). 부코비나의 체르노비츠(당시 오스트리아령, 현재 러시아령)에서 유대계 독일인으로 출생. 제2차 세계대전 후 빈을 거쳐 파리에 정주(定住)하였으며, 센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부모를 잃은 나치스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에서 온 마음의 상처를 핵(核)으로 하여 유대 신비 사상을 숨기고,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드물게 보는 순수한 시공간을 창조하였다. 시집 《양귀비와 기억 Mohn und Gedächtnis》(1952)에 수록된 〈죽음의 푸가 Todesfuge〉는 현대시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생전에 6권, 사후에 3권의 시집이 간행되었고, 1960년에 퓨히너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저서로 《Sprachgitter》(1959) 《Die Niemandsrose》(1963) 《Lichtzwang》(1970) 《Schneepart》(1971) 등이 있다.
8) Pierides: King Pierus, once king of Macedon, had nine daughters he named after the nine Muses, believing that their skills were a great match to the Muses (mousi). He thus challenged the Muses to a match, resulting in his daughters being turned into magpies and jackdaws. In Greek Mythology these nine daughters of the king usually are referred to as the Pierides. (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