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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무역은 생산력들을 증대시킵니다. 산업이 성장하면, 부, 생산력들, 한마디로 말해 생산적 자본이 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면, 노동의 가격 따라서 임금 또한 증가합니다. 노동자에게 있어 가장 유리한 조건이란 자본의 성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정해야 합니다.(중략)

그러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노동자에게 있어 가장 유리한 상태인 자본이 성장할 경우에 노동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는 사멸할 것입니다. 생산적 자본의 성장은 자본의 축적과 집적을 의미합니다. 자본의 집중은 분엽의 증대와 기계 사용의 증대를 초래합니다. 분업의 증대는 노동의 특수 기능, 노동자의 특수 기능을 파괴하고, 이 특수 기능을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으로 대체함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증대시킵니다.


자유무역으로 인한 자본의 생산력의 증대-> 노동자의 파멸
자본의 정체, 산업의 쇠퇴-> 노동자의 파멸

그렇다면 둘 중 하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전체를 부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은 경제법칙들에 의해 온갖 가혹함에 의해 타격을 입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거나.


더 나아가 이 노동자들의 불행은 산업의 진보와는 불가분의 것이고 국민 복지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할 때, 그는 부르주아 계급의 복지는 노동 계급의 불행을 필요조건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우링 씨가 죽어가는 노동자들에게 해대는 위로, 그리고 자유무역론자들이 확립해 놓은 모든 보상 학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으로 귀착됩니다:
 죽어가는 수천의 노동자 여러분, 절망하지 말라. 당신들은 안심하고 죽을 수 있다. 당신들 계급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 계급의 숫자는 언제나 너무 많아서 자본은 그 일부를 죽이면서도 절멸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더욱이 만약 자본이 착취 재료인 노동자들을 재차 착취하기 위해 그들을 항상 신경써서 준비해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본이 유효한 사용법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노동자들의 불행은 산업의 진보와는 불가분의 것이고 국민 복지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  16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개소리.



께네로부터 리카도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자들이 개진했던 모든 법칙들은 지금까지 상업상의 자유를 구속해 왔던 질곡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 법칙들은 자유 무역이 실현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확증됩니다. 그중 제1법칙은 경쟁이 모든 상품의 가격을 그 생산비의 최소치로 인하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의 자연가격은 임금의 최소치입니다.


"기계 장치에서의 모든 개량의 변함없는 목적과 경향"이 "인간 노동의 가격을 저하시키는 것"이듯이, 경쟁의 제1목적은 자본의 앵무새들이 씨부리듯이 인간능력의 개화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상품의 가격을 그 생산비의 최소치로 인하시키는 것"이다. 노동력 상품도 당연히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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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으로는 비이성적인 인간들이 어떻게 집단적으로는 이성에 복종하겠다고 결단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가 바로 앞에서 인용한 원문의 괄호 친 구절이 시사하듯이["정신 나간 자로 보일까봐 아무도 감히 이를 노골적으로 위반하지는 못한다" 신학정치론 16장] 그런 결단을 내리도록 그들을 강제하는 것은 그들이 함께 모여서 토의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따라서 사람들을 이성에 복종하도록 추동하는 것은 이성적인 욕망의 힘이 아니라 오히려 정념적인 명예의 야망이거나 이 야망의 부정적 이면, 곧 수치에 대한 공포이다. 하지만 결과만은 사실상 이성에 부합하는데, 이는 야망이 이성이어서가 아니라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4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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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rtford-hwp.com/archives/41/index-cba.html


Declaration from the Mountain of Guerrero
Convencion Nacional Indigena (CNI), 25 December 1994. Having reunited during the 16,17,18th of December of 1994 in the ancient territories of the People of the Rain, the People of the Heart of the Mountain, and the People of the Tiger in Tlapa, Guerrero the Indigenous Pueblos and Organizations of Mexico have spoken our Word. The struggle of our brothers in Chiapas. Autonomy constitutes one of our principal rights. Constitutional recognition. Struggle within a comprehensive process of Mexican national democratization. Women delegates. The indigenous movement at the global level.
 
The Declaration of San Cristobal
National Congress of Indigenous Peoples, 10 and 11 January 1998. The Continuation Committee extension of the National Congress of Indigenous Peoples (NCIP), which met from the 10th to the 12th of January in San Cristobal de las Casas, Chiapas, elaborated the following Political Declaration right after the recent incidents that aggravated the situation of indigenous peoples of Chiapas, and it was affirmed that indigenous peoples from other regions of Mexico are suffering the same situation.
 
Netwarriors—March '98 CNI Report
From the National Indigenous Congress, 13 March 1998. We are still waiting for our rights to be recognized. A relationship based on the principles of plurality, sustainability, integrity, participation, and free determination declared in San Andres Sacam Ch'en de los Pobres, but the response of the Mexican government has been one of military harassment and repression against our people.

Indigenous Peoples Congress Statement
Nuevo Amanecer Press, 12 October 1998. The Second National Indigenous Congress. We assume the historic task, the comprehensive rebuilding of our Indigenous Peoples. By affirming our identity, we affirm that of everyone; that of those who wish to build a large house where all of us who are all fit. We ratify that the San Andres Accords are our word, of which the essence is the constitutional reform proposed by the Cocopa; the constitutional recognition of our full collective rights will be the central focus of our struggles and concerns.

Preliminary Report on Results from Indigenous National Congress
Nurío, Michoacán, 2, 3 and 4 March 2001. The Third Indigenous National Congress was attended 3,300 indigenous delegates officially sent by their communities, representing 42 of the 56 ethnic groups in Mexico. The assembly demanded the recognition of indigenous rights in the Mexican constitution, in the form written by the Cocopa (Concord and Peace Commission). Vicente Fox’s Plan Panamá-Puebla and the proposed superhighway on the Isthmus of Tehuantepec in Oaxaca and Veracruz. Demilitarization and release of all indigenous political priso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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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10/04/28 12:03 from 서고/독서노트

 

5장 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갖는 인식과 앎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그 사물이 더 훌륭하고 좋은 것으로 보일수록 우리의 사랑도 점점 더 커진다.

더 좋은 것을 알게 되거나, 우리가 사랑했고 혹은 훌륭하고 좋다고 여겨왔던 것이 커다란 괴로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가 가졌던 사랑이 없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칠 수는 없다(놀라움이나 다른 정념들에 대해서는 그러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그것은 불가능하다. (2) 우리가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대상에서 찾아낸 좋은 것 혹은 이로운 것에만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그전에 그것을 아예 몰랐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자유에 달려있지 않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면, 분명 우리는 또한 아무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이다. 우리의 본성이 약하게 주어져 있기 때문에 만약 우리와 결합되는 어떤 것, 그리하여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어떤 것을 향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어떤 것을 향유하고 그것과 결합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메모: 경철수고에서 맑스가 인간이 유적존재일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쓴 부분

스피노자, Short Treatise on God, Man, And His Well-Being (Edwin Curley판 1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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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2010/04/26 19:04 from 서고/독서노트

전투에 취미가 있는 우리의 독자들은 탈주로서의 계급투쟁 관념이 충분한 투쟁을 함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꺼림칙 할지도 모르겠다. 걱정할 것 없다. 일찍이 모세는 권력자들이 전투없이 사람들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탈주가 맨발에 무일푼으로, 벌거벗인 삶인 채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것인 바를 취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과거 노동의 산물이자 우리 미래의 자율적 생산과 재생산의 수단인 공통적인 것에 대한 재전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전투의 장이다.

Antonio Negri & Michael Hardt, Commonwealth, 164p.


+ 왜 이런 글에 마음이 설레고 그럴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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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은 자본의 기능과 자본에 대한 비판 모두에 본질적이다. 실제로 <자본론>에서 맑스의 출발점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토대로서의 추상적 노동에 대한 분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그 구체적 적용과 무관하게 일반적 노동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재단사, 배관공, 기계공의 구체적 노동들로부터 추상되어야 한다고 맑스는 설명한다. 상품에 응고된 이 추상적 노동이 모든 상품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실체이며, 상품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측정가능하게 해주고 결국 화폐가 일반적 등가물로 기능하도록 해준다. 맑스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자본론의 첫 페이지들에서 정치적 상응물들을 분간해내려는 열망에 가득차서, 이러한 구분을 정치적 입장과 관련짓는다. 구체적 노동에는 찬성, 추상적 노동에는 반대, 사용가치에는 찬성, 교환가치에는 반대. 그러나 맑스는 추상을 양가적으로 본다. 추상적 노동과 교환 체계가 잉여가치를 추출하고 자본주의적 통제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인 것은 맞다. 그러나―서로 다른 직업에서의 노동에 공통적인 것을 드러내주는―추상적 노동 개념은 노동계급을 생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추상적 노동 없이 노동계급은 없다! 이는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본질적 기능들[이 잘 실행되도록]을 보장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저항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수단들을 창조해내는 방식의 한 사례[일 뿐]이다. 자본주의의 추상은 항상 공통적인 것에 의존하며 공통적인 것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단지 그것은 계속해서 공통적인 것을 신비화하고자 애쓸 따름이다. 따라서 추상은 양가적이다.



Antonio Negri & Michel Hardt, Commonwealth, 159p. 부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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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2009/12/15 14:45 from 서고/독서노트
『저 꽃이 불편하다』

시인의 말

이 시집을 다시 펼치는 것이 두렵고 부끄럽다.
지난 몇년 동안 나는 내 안의 세계가 격심한 혼란 속에서 해체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돌아보건대, 나에게 시 쓰는 일이란 그런 해체의 또다른 과정이었거나, 어떤 치유가 아니었던지.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한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잊을 것도, 사라진 것도 없다.
삶에 대하여 지키지 못한 약속도 때로는 남은 시간을 지키는 불빛이 되지 않던가.

창작과비평사와 고형렬 선배의 과분한 애정에 대해서 언제 한번쯤은 제대로 된 시적 예의를 차릴 수 있을 때가 올 것임을 나는 믿는다.

지향도 분명치 않은데, 이제 오래 머물렀던 곳을 떠나야겠다.

기우는 가을빛 속으로 웬 새가 날아간다.

2002년 시월 인천에서
박영근

시인의 시는 담담히 읽다가
왜 거기서 울컥 울음이 울어졌는지
꼭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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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차 -


□ 하이데거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 (121-122)

□ 시와 철학의 세 가지 관계 방식 (122-126)

 - 경쟁하기, 거리두기, 분류하기

□ 하이데거 사유 방법의 본질 (126-128)

□ 시와 철학의 새로운 관계 정립 (128-136)

 - 하이데거 이후의 시: 시의 새로운 자리

 - 철학의 임무: 철학에 합당한 자리 찾기

 - 철학은 왜 자신의 조건들에 불쾌함을 느끼는가

 - 시에 대한 철학의 처리 공정: 문학적인 것을 배치하기

□ 루크레티우스에게서 시와 철학의 관계: 새로운 관계 정립의 가능성 (136-139)

 -  루크티우스에게서 시가 나타나는 방식

 -  철학과 시 사이의 간격




하이데거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


[121.1] 모든 철학적 모험은, 개념의 수준에서 그 공가능성compossibility을 다루기 위해 자신의 시간적 조건들을 향해 돌아선다. 우리는 하이데거의 작업에서 이러한 돌아섬의 네 가지 양식들을 쉽게 분간할 수 있다.


1. 시간의 내밀한 엑-스타시ek-stasis에서, 실로, 변형을 가져오는 물음에 대한 고려를 통해 걸러진 것 같은 경험에서 발견되는 지지支持의 지점. 이는 『존재와 시간』에 대한 실존적-존재론적 분석이다.

2. 하이데거가 투쟁적으로 실천한 민족주의적-사회주의적 정치. 이는 단호한 결정의 독일적 발생으로, 땅, 노동, 공동체, 장소의 전유와 같은 범주들에 근거하여 기술 허무주의의 군림에 맞서는 사유의 독일적 발생으로서 여겨졌다.

3. 로고스와 짝을 이루는 '존재being'의 운명으로 생각되었던 철학사에 대한 해석학적이고 역사적인 재평가. 여기서 우리는 칸트와 헤겔, 니체와 라이프니츠에 대한 빛나는 분석들과, 그리스인들로부터, 특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부터 이끌어낸 교훈들을 볼 수 있다.

4. 1935년 이래, 횔덜린에 대한 강의에서부터 하이데거의 대화자로 특권지어진 위대한 독일의 시들.


[122.1] 이 네 번째 지지점은 나머지 세 가지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르네 샤르Réne Char부터 미셸 드기Michel Deguy2)에 이르는 시인들을 포함하여 프랑스의 하이데거 팬들은, 하이데거가 시적 언어에 숨겨져 있는 사유의 지점을 철학적으로 접촉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따라서 하이데거 철학의 힘을 넘어가고자 한다면, 시인의 말하기와 생각하는 자의 사유 쌍―그의 용어법에 따르면―을 반드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시와 철학적 추론의 엮임과 분리를 새롭게 정식화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시와 철학의 세 가지 관계 방식


[122.2] 우선, 하이데거에 따르면 원래 이 두 용어 사이에 구별이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유에서 로고스는 시적인 것 그 자체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와 헤라클레이토스의 금언들에서 볼 수 있듯이, 사유를 지키는 파수꾼이 바로 시이다.

[122.3] 바디우는 이 지점에 대해 일종의 공리적 논쟁을 함으로써 시와 철학 사이에 다른 관계 혹은 무관함의 재구축을 시작하고자 한다.

[122.4] 파르메니데스가 자신의 시를 여신의 부름에 이끌려 가는 것으로 두고, 전차를 타고 가는 이미지로 글을 시작할 때3), 우리는 아직 철학 안에 있지 않다. 내러티브와 계시에 대한 의존을 허용하는 진리는 여전히 신비에 사로잡혀 있는데, 철학은 신비의 베일을 찢고자하는 욕망을 통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123.1] 파르메니데스에게 시적 형식은 본질적이다. 시적 형식이 가지는 권위가 담론과 신성성이  인접성을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은 탈신성화 함으로써만 시작하며, 그 자신에 고유한 것이면서 지상의 정당화인 담론의 체제를 구축한다. 철학은 속화된 논변이 심원한 발화의 권위를 차단할 것을 요구한다.

[123.2] 바로 이러한 점에서 파르메니데스는 철학의 시작-직전을 이룬다.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을 사용하여 비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장면4)에서 특히 그러하다. 시 안에, 정합성의 자율적인 규칙rule of consistency에 대한 이러한 의존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지, 이야기의 신성한 권위와 진리 사이에 시가 조직한 결탁이 중단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23.3] 우리가 이를 수학의 추론적 특성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중단의 바탕에 수학소의 질서가 놓여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분명 귀류법 논증은 정합성에 근거하는 논변의 중요한 모태이며, 따라서 그것은 진술하는 주체의 내러티브나 비전秘傳적[비밀을 전하는] 지위에 기반하는 그 어떤 정당화와도 양립할 수 없다. 여기서 수학소는 이야기하는 자를 사라지게 하고, 그 장소에서 모든 신비한 정당화 형태를 제거하면서, 논변을 자율성의 시험에, 즉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비판적 혹은 대화적 검토에 부친다. 

[123.4] 그리스에서만 수학소가 내러티브에 의한 정당화의 신성한 실행을 중단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에서 철학이 시작되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러한 중단의 순간-직전―여전히 신성한 내러티브 안에 있고, 시적 포획 안에 있는 순간―을 나타낸다.

 

[124.1] 플라톤이 시를 연상하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고찰을 체계적인 불신에 밀어붙이면서, 이러한 중단을 명명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우리에게 철학의 가능성을 구성하는 이 중단의 몸짓을 철저하게 분석할 것을 제안했다.

- 시의 모방적 포획, 개념이 결여된 유혹, 이데아 없는 정당화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철학의 왕권이 작동하는 공간에서 제거되고 금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단절은 고통스럽고 지난한 것이겠지만(국가 10권을 보라) 이는 철학의 방식 뿐 아니라 철학의 실존existence과 관련된 문제이다.

- 진리의 탈신성화와 탈 시화de-poeticization에서 수학이 하는 역할을 보았을 때, 교육학적으로는 정치교육에서 정수론과 기하학에 결정적 위치를 부여하고, 존재론적으로는 수학을 궁극적 변증법의 전개에 이르는 대기실로 만드는 지적존엄을 부여함으로써, 수학을 명시적으로 승인해야만 한다.


[124.2] 설명 기술이 가장 시적이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반면 플라톤은 자신이 배제한 것의 매혹에 빠질 여지가 항상 있었다. 그 자신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시는 앎Knowledge의 처리에 내맡겨진 하나의 개별 대상일 뿐이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플라톤이 수학에 부여했던 모든 존재론적 존엄성의 속성들을 박탈한다. ‘시학’은 철학 행위의 분과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철학을 정초하는 논쟁들이 완결되고, 자신의 부분들의 접합구조에서 안정화된 철학은 더 이상 자신을 조건짓는 것들에 극적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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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1.1 세계 질서


참고 자료


1. 베스트팔렌 조약


페르디난트 2세(Ferdinand Ⅱ,1578~1637)의 반종교개혁에 대한 보헤미아의 반란에서 시작된 독일 30년전쟁(Thirty Years' War, 1618~1648)은 독일을 무대로 전개되었지만 덴마크와 네델란드, 스웨덴, 프랑스, 에스파냐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참여한 국제 전쟁이었다. 1637년 페르디난트 2세가 죽자, 새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페르디난트 3세(Ferdinand Ⅲ,1608~1657)는 1641년 종전을 제의했다. 1644년 봄부터 황제를 비롯해 66개의 영방(領邦) 대표, 프랑스, 스웨덴, 에스파냐, 네덜란드 등이 참여한 강화회의가 시작되었다. 협상은 흥청망청한 분위기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1648년 봄, 30년 전쟁의 진원지였던 프라하가 스웨덴에 점령되고 프랑스가 황제군과 에스파냐 군대에 승리를 거두면서 협상이 급진전되었다. 마침내 1648년 10월 24일 베스트팔렌(Westfalen)의 오스나브뤼크에서 조약이 체결되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주요 내용및 결과는 다음과 같다. ① 프랑스가 알자스 대부분과 메스, 투르, 베르됭의 세 주교령을 얻어 라인강 유역까지 국경을 넓혔다. 스웨덴은 서(西)포메른과 브레멘대주교령, 페르덴주교령 등의 영토를 얻어 발틱해와 북해의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 그리고 제국 안에서 브란덴부르크가 동(東)포메른, 마크데부르크대주교령, 덴주교령 등의 영유를 인정받고, 바이에른과 작센 등도 약간의 영토와 선제후위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열강으로 떠올랐다. ② 스위스와 네덜란드가 독립국 지위를 승인받았다. ③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宗敎和議)가 정식으로 승인되며, 칼뱅파에게도 루터파와 동등한 권리가 주어졌다. 또한 농노나 예속인들이 영주와 종교가 다를 경우에도 사적 또는 공적으로 종교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었다. ④ 독일의 영방(領邦) 제후와 제국도시들에 '황제와 제국(帝國)을 적대하지 않는 한에서'라는 조건으로 상호 또는 외국과 동맹할 권리가 인정되었다. 제후들에게 영토에 대한 완전한 주권과 외교권, 조약 체결권이 인정된 것이다. ⑤ 그 밖에 교회령에 대해서는 1624년의 상태로 되돌리기로 결정했으며 베스트팔렌 조약에 대한 반대나 거부는 어느 누가 표명하든지 간에 모두 백지화, 무효화한다고 선언하여 독일 문제에 교황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베스트팔렌 조약은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와 신성로마제국의 지배적 역할을 실질적으로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가져왔다. 조약은 제후들에게 완전한 영토적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고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에게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였다. 이는 정신적으로는 교황이 주도하고 세속적으로는 황제가 주도하는 가톨릭 제국으로서의 신성로마제국이 실질적으로 붕괴된 것을 의미했다. 황제와 교황의 권력은 약화되었으며, 정치는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 세속화하여 국가 간의 세력 균형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새로운 체제를 가져왔다. 이는 유럽의 근대화와 절대주의 국가의 성립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한편, 베스트팔렌 조약은 유럽의 세력균형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합스부르크 왕가(Habsburg Haus)의 권력이 약화되고 에스파냐는 네덜란드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했다. 대신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화되었으며, 제국 안에서도 브란덴부르크와 바이에른 등의 성장이 촉진되었다.


2. 나폴레옹 전쟁


처음에는 프랑스혁명을 방위하는 전쟁의 성격을 띠었으나, 차차 침략적인 것으로 변하여 나폴레옹은 유럽 제국(諸國)과 60회나 되는 싸움을 벌였는데, 이것은 제2차 백년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혁명 그 자체에서 나온 조국과 국민의 영광이라는 형태로 변질된 내셔널리즘의 왜곡된 변질성을 찾아볼 수 있으나, 프랑스 국내에서는 나폴레옹이 혁명의 정치원리를 뒤엎고 군사독재(軍事獨裁)를 강화한 정치적 모순을 내셔널리즘의 너울을 씌워 은폐한 효과를 거두었다. 그 바탕에는 영국·프랑스간의 중상주의적(重商主義的) 경쟁이 기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침략받은 유럽 제국은 영국을 중심으로 대프랑스동맹을 결성하여 나폴레옹에 대한 항전을 계속하였다.


한편 프랑스혁명에서 탄생한 내셔널리즘은 나폴레옹전쟁을 계기로 유럽 각지에 확대되어 도리어 반(反)나폴레옹적인 각국의 애국주의 운동에 이어져 발전되었다. 그리하여 세계지배를 꿈꾸던 나폴레옹의 웅대한 시대착오적 야망은 전쟁의 실패로 무너졌으나, 그의 전쟁은 뜻밖에도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것은 19세기 역사의 주류를 형성하는 자유주의·국민주의의 전파, 정복지의 구(舊)제도 폐지와 민주적 제도·입헌정치의 수립, 혁명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군인들에 의한 자유·평등 사상의 이식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자유주의의 확대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요구하는 국민주의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3. 빈 회의


프랑스와의 강화회의가 아니라, 나폴레옹의 엘바섬 추방 후인 1814년 5월에 체결된 강화조약(제1차 파리조약)에 의하여 프랑스가 포기한 영토의 처분에 관한 회의이다. 그러나 전유럽에 걸친 전쟁을 수습하기 위한 이 회의의 과제는 광범위하게 걸쳐 있고, 또 유럽 각국에서 군주와 지도적 정치가가 모인 대회였기 때문에, 실제상의 강화회의라 해도 무방하다.


회의의 발안자(發案者)는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메테르니히이며, 오스트리아 정부는 각국 대표의 접대에 거액을 투자하였다. 크고 작은 90개의 왕국과 53공국(公國)의 군주, 정치가들이 참가하였으나, 실제에는 대부분의 의사(議事)가 오스트리아·영국·러시아·프로이센의 4대국과 프랑스와의 5개국 위원회에 의해 운영되었다. 프랑스는 비록 패전국이긴 하였지만, 대표위원인 C.M.탈레랑 페리고르의 책동에 의하여 4개국과 똑같은 지위를 얻었다.


그 밖에 에스파냐·포르투갈·스웨덴 등을 추가하여 8국 위원회, 그리고 문제의 관계국에 의한 위원회가 열렸으나, 참가국 전체가 한 자리에 모이는 전체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폴란드와 작센의 처분문제로 의사진행이 지지부진한 데다, 메테르니히는 회의가 난관에 부딪치면 향연과 무도회를 베풀어 국면의 타개만을 도모하였으므로 각국의 군주들은 사교(社交)에만 열중하여, “회의는 춤을 추나 회의 진척은 없다”라고 비평받기도 하였다.


1815년 3월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여 프랑스 본토에 상륙하였기 때문에 회의는 한때 혼란스러웠으나,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전되기 직전인 그해 6월 빈회의의 최종 의정서(議定書)가 조인되었다. 이것은 121개조로 성립되었으며, 프랑스혁명 이전의 왕조로 복귀시키는 정통주의와 강대국 간의 세력균형이라는 원칙에 의해 유럽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오스트리아는 네덜란드를 포기하고 북이탈리아를 얻었으며, 프로이센은 바르샤바 대공국의 일부와 작센·라인 지방에 영토를 얻었다.


영국은 전쟁 중에 획득한 식민지의 영유를 확인받았으며, 네덜란드가 벨기에를 합병하는 등의 변동이 있었다. 또,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 되었으며, 독일에는 독일연방이 성립하였다. 나폴리·프랑스·에스파냐 등에서는 구(舊)왕가가 복위하였다. 여기에 빈 체제가 탄생하였으며, 프랑스혁명 이래의 유럽의 전쟁과 정치적 변동을 복고주의적으로 수습하였다.


기억할 구절들


“UN은 국제적 질서 관념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동시에 그 너머의 전지구적 질서라는 새로운 관념을 가리키는 정점으로 간주될 수 있다.” 4p.


그들[초국적 세계 권력의 입헌화/구성을 홉스주의, 로크주의의 변형으로 응답한 이론들]이 이해하지 않은 것은 제국 주권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표지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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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서문 노트

1. 식민 체제가 전복되고 소비에트라는 장벽이 급작스럽게 무너진 뒤, 우리는 저항할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는 경제․문화적 교환의 전지구화를 목격해왔다. 제국은 이들 전지구적 교환들을 조절하는 정치적 주체이자,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 권력이다. 제국은 우리의 눈 앞에서 물질화/구현되고 있다.

2. 이러한 전지구화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정치 영역으로부터 경제 영역이 완전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획득한 것에 대해 환호를 보내는 자들과, 경제 영역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가로막히게 된 데 대해 슬퍼하는 자.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전제는 다음과 같다: 경제 영역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율적으로 되었다. 정치적 주권은 이제 쇠락하였다. 생산의 제 요소들(화폐, 기술, 사람, 상품)이 국가의 경계를 가로질러 이동하고, 국민국가가 이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볼 때, 국민국가의 주권이 쇠락하고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국가 주권의 쇠퇴가 주권 그 자체의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통제들, 국가 기능들, 조절의 기제들은 계속해서 경제적, 사회적 생산과 교환의 영역을 통치해왔다. 주권은 단일한 통치 논리로 결합된 일련의 국가적, 초국가적 유기체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전지구적 주권 형태가 바로 제국이다.

3. 국민국가 주권의 쇠퇴는 제국이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이다. 국민국가와 그것이 함축하는 경계, 배제, 아와 비아의 뚜렷한 구별은 근대 유럽의 제국주의를 특징짓는다. 전지구적 땅따먹기. 식민영토에 대한 깃발꽂기.

4. 제국은 권력의 어떠한 영토적 중심, 경계도 설정하지 않는다. 제국은 명령 네트워크의 조율을 통해 이종적 정체성들, 유연한 위계들, 복수의 교환들을 관리한다. 제국주의가 그려놓은, 영토를 표시하는 색들로 물든 세계지도는 제국의 전지구적 무지개로 섞여 들어간다.

5. 제국주의적 세계지도의 변형과 세계시장의 실현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부의 이행을 알려준다. 우선 제1-3세계의 공간적 분할이 뒤섞인다. 1세계 안의 3세계. 3세계 안의 1세계. 자본은 매끄러운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혹은 차이화와 동질화,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새롭고도 복잡한 통치체제로 규정되는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새로운 전지구적 흐름들에 한계를 부과하고 통로를 구축하는 일은 지배적인 생산과정 자체의 변형을 수반한다. 산업노동에서 소통적, 협력적, 정동적 노동으로, 삶정치적 생산으로의 이행. 이제 생산은 사회적 삶 그 자체를 생산한다.

6. 미국은 제국 내에서 특권적 위치를 점한다. 그러나 이 특권적 지위는 지난날 제국주의 주권 체제에서 영국이 가졌던 것과 아무런 유사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 헌법/구성constitution의 제국적 기초들에 주목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권력이 네트워크 속에서 효과적으로 분배되는 프런티어의 끝없는 확장, 팽창.

7. 여기서 ‘제국’은 로마, 중국 등의 역사상의 제국들과의 유사성을 설명해야 하는 은유가 아니라 이론적 접근을 필요로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제국 개념은 기본적으로 경계의 결여로 특징지어진다. 공간적 경계의 결여, 시간적 경계의 결여, 통치 대상에 있어서의 경계의 결여.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번째, 세 번째인데, 제국이 스스로를 역사의 한 계기가 아니라 일체의 시간적 경계도 결여한 체제로 드러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물음이 생긴다. 모든 통치체제는 자신을 초역사적인 것으로, 혹은 역사가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으로 따라서 자신을 역사 바깥에 있는 것으로 제시하지 않는가? 제국은 그러한 일반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일 뿐일까? 세 번째, 제국은 사회적 질서가 등록되는 모든 곳에 작용한다. 그것은 영토와 인구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제국이 거주하는 세계 그 자체를 만들어낸다. 즉 사회적 질서가 등록되는 세계 자체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정치, 경제, 문화 영역의 구분, 공/사의 구분이라는 것은 얼마나 무용한 것이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들의 상호작용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 그 자체를 직접 통치하고자 한다. 제국의 통치 대상은 사회적 삶 그 자체이며 따라서 제국은 삶권력의 패러다임적 형태를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제국의 실제는 피로 물들어 있지만, 제국 개념은 항상 평화에 바쳐진다.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초역사적 평화에게.

8.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제국은 파괴와 억압의 거대한 힘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지난 날의 지배 형태를 그리워하게 만들어선 안된다. 제국으로의 이행과 지구화의 과정은 해방의 힘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지구화는 단일한 과정이 아니다. 우리의 정치적 임무는 단순히 이 지구화과정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전지구화 흐름들을 재조직화하고 그것을 새로운 목표를 향해 재정향시키는 것이다. 제국을 지탱하는 다중의 창조적 힘은 대항-제국, 전지구적 흐름과 교환의 대안적인 정치적 조직화를 자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제국에 대항하고 그것을 전복하려는 투쟁들은 제국적 영역 그 위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투쟁들을 통해 다중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태들과 새로운 구성권력을 발명하여, 우리를 제국을 관통하여 제국 너머로 데려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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