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
바루흐 데 스피노자가 고귀하고 식견있는 헨리 올덴부르크에게
지난 번 편지에 대한 답장
존경하는 선생,
당신의 겸손함이 당신이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탁월함을 생각해보도록 허락만 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우정이 나에게 얼마나 기쁜 것인지를 헤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한 탁월함을 생각해 볼 때(게다가 친구는 모든 것들을, 특히 영혼적인 것들을 나누어야만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나는 내가 당신과 감히 우정을 맺는다는 것이 주제넘은 짓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정중함과 선의지 덕분입니다. 당신의 정중함이 너무도 커서 당신은 스스로를 기꺼이 낮추었고, 당신의 선의지는 너무나도 풍부하여 나를 기꺼이 풍요롭게 하였으므로, 나는 당신이 지속하여 내게 제공하고 황송하게도 나에게 그 응답을 부탁한 친밀한 우정을 맺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열심히 가꾸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내가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체의 정신적 재능에 관하여 #당신이 요구하는 것을 나는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매우 손해가 될지 모른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1)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이 나에게 요청한 것을 거절하기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우정의 권리로, 나는 우리가 논의했던 문제에 관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설명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당신의 너그러움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당신을 나에게 좀 더 밀접하게 묶어주는 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제 나는 다음에 관하여 잠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D1] 신을 나는, 그 각각이 자신의 유에서 무한하며 혹은 최고로 완전한 무한한 속성들로 이루어진 존재로 정의한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D2] 나는 속성을 그 자체를 통해서, 그것 안에서 생각되어지는 모든 것으로, 그래서 그 개념이 다른 사물의 개념을 수반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
예컨대, 연장은 그 자체를 통해서, 그것 안에서 생각되지만, 운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운동은 다른 것 안에서 생각되고, 그것의 개념은 연장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D1'이 신에 대한 참된 정의라는 것은 우리가 신을 최고로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볼 때 분명합니다. 게다가, 이 정의로부터 그러한 존재가 실존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쉽습니다. 여기는 증명을 할 적합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증명을 생략할 것입니다. [연장과 사유 사이의 참된 구별에 관한] 당신의 첫 번째 질문에 만족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내가 여기에서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P1] 두 개의 실체가 그들의 모든 본질에 있어서 전적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면, 자연 안에 두 개의 실체는 실존할 수 없다는 것;
[P2] 실체는 생산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실존하는 것은 실체의 본질이라는 것;
[P3] 모든 실체는 무한하거나 혹은 자신의 유 안에서 최고로 완전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것들을 내가 증명한 바 있기 때문에, (당신이 신에 대한 정의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당신은 내가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 더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것들을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증명해서 당신에게 제시하는 것보다 더 명료하고 간단하게 증명하는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와 별도로 그것들을 당신에게 보내고, 이와 관련한 당신의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2)
다음으로 당신은 내가 데카르트와 베이컨의 철학에서 찾아낸 오류들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오류를 들추는 것은 나의 습관이 아니지만, 당신이 바라는 바에 응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대한 오류는 그들이 제1원인과 모든 사물의 기원에 대한 앎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인간 정신의 참된 본성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들이 오류의 참된 원인을 결코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앎에 대한 열망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세 가지에 대한 참된 앎이 얼마나 필수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제1원인과 인간 정신에 대한 앎에서 빗겨났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정리들[propositions]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세 번째 오류만을 보이겠습니다.
나는 베이컨에 대해서는 거의 말할 것이 없는데,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혼란스럽게 이야기하고 있고 거의 아무 것도 증명하고 있지 않으며, 오직 주장만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가정하고 있습니다:
⑴ 인간 지성은 감각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본성에 의해서도 속는다. 지성은 우주에 대한 유비로부터가 아니라 그 자신의 본성에 대한 유비로부터 모든 것을 꾸며낸다. 그것은, 사물의 광선과의 관계에서 울퉁불퉁한 거울처럼 그 자신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을 섞는다, 등등.3)
⑵ 인간 지성은 본성상 추상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어서 덧없는 것들을 지속적인 것으로 꾸며댄다, 등등.
⑶ 인간 지성은 침착하지 않고, 입장을 취할 수도, 휴식을 취할 수도 없다(?).
베이컨이 주장하는 다른 원인들은 모두, 데카르트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하나의 원인으로 쉽게 환원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고 지성보다 더 광범위하다, 혹은, 베이컨이 더욱 혼란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듯이(아포리즘 49), 지성은 편견없는 견해가 아니라, 의지에 의해 자극받은 것이다. (여기서, 베이컨이 종종 지성을 정신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베이컨은 데카르트와 다릅니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다른 원인들을 차치하고 나는 위에서 언급한 이 원인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는 데카르트와 베이컨이, 흼(whiteness)이 이런 저런 흰 것과 다르듯이 혹은 인간성이 이런 저런 인간과 다르듯이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의지(the will)가 이런 저런 의지작용들(volitions)과 다르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의지가 이런 저런 의지작용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성이 베드로와 바울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입니다. 의지는 단지 이성의 존재일 뿐이고 결코 어떤 식으로든 이런 저런 의지작용의 원인이라고 불려서는 안됩니다. 특정한 의지작용들은 자유롭다고 할 수 없고(그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요구하므로), 그 의지작용들의 원인들이 그들을 그러하게 결정한바 대로임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데카르트에 따르면 오류 자체가 특정한 의지작용인데, 이로부터 오류는(즉 특정한 의지작용은) 자유롭지 않으며 결코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 원인에 의해 결정지어진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따라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가 증명하겠다고 약속한 바입니다.
[린스버그에서, 1661년 9월]
1) [옮긴이]원문 “As for any mental endowments I may possess, I would gladly let you claim them for yourself, even if I knew that it would be greatly to my detriment.” 무슨 의미인지??
2) [옮긴이]스피노자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기하학적 증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별도의 노트는 유실되었다고 전해진다. 편지 3에서 올덴부르크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공리와 증명들은 편지 4와 이후의 편지들을 통해 추론해내야 한다.
3) 이 구절은 베이컨의 Novum Organum Ⅰ, 41에 대한 인용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스피노자의 인용은 “The Plan of the Work" (베이컨, Ⅰ, 138-139)의 구절에 더 가깝다. analogia와 radiusfk는 베이컨의 용어 사용에 대해서는 130, 138 페이지에 있는 엘리스의 주석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