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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L을 위한 노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2/24 대필
  2. 2009/11/16 황강 (2)
  3. 2009/10/16 봄날
  4. 2009/07/05 꽃잎1

대필

2009/12/24 19:28 from 서고/L을 위한 노래

12월 모일
구리에서 강변 역을 향하는 시외버스 안.

수중엔 단돈 5만원
이것으로 남은 날은 20여일
만 오천원짜리 케이크를 하나 사고
아들은 구리역을 향해 덜컹이는 전철 안에서
귤 오천원 어치를 더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강바람이 찬 구리에는
당신의 생일에
밤 늦도록
닭 튀기는 어머니

모처럼 오는 아들에게 줄
고깃국을 끓여놓고
자꾸만 시계를 올려다보는
사람

자정으로 가는 시간
마지막 닭은
대리로 받은 돈 2만원으로
새끼들에게 줄 통닭 한 마리를 사고
봉다리를 흔들며 집으로 향하는
40대 중반의 아저씨에게

아가, 또 오너라
밥 꼭 챙겨먹고

아들은 강변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싸워야만 하는 이유,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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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순덕한 호랭이 트랙백 0 : 댓글 0

황강

2009/11/16 17:33 from 서고/L을 위한 노래

이건 도대체가 생각을 못한 일이다.
그 너르고 깊던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싹 마를 수 있다는 건.
K는 망연자실, 강둑에 내려갈 생각도 못하고 길가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기 우째...!"
안그래도 불툭 불거져나온 입이 헤 벌어져 더욱 도드라졌다.

황강을 막아 합천댐을 세운다는 이야기가 돌 때만 해도
수몰되는 봉계리나 금봉리에 어디 조상이 쟁여둔 땅이 없나만 관심있었지
댐의 하류에 면한 쌍책의 황강 지류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정말이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K는 모래뻘에 내려가볼 생각으로 무릎을 짚어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그 곱던 하얀 모래밭은 잡초와 쓰레기로 우거져 옛모습을 가늠 할 수 없었다.
이러한 때에 이곳으로 향하게 한, 그의 선명한 기억이 아니었더라면, K는 이 곳이 강이었을 거라고,
이 곳에 쌍책과 초계리의 사람들을 모두 먹이고, 씻기고, 놀리고도 남을만큼 넉넉히
맑은 물이 흘렀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째.. 여까지..."

쌍책을 주름잡던 훈장 댁 막내아들이
요모양 요꼴로 폐가가 된 옛집을 찾을 만큼 시간이 흘렀고,
K도 그 시간을 살아오며 천지개벽은 별 일도 아닐만큼 세상이 변한다는 것도 터득했지만
이곳도 그 가차없는 시간을 겪어왔을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했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K는 생각했다.

'내가 늙은기가..허허'
꼼꼼하고 현실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가, 무방비 상태로 뒷통수를 한 대 제대로 맞은 것처럼 느낄만큼
쌍책의 시간을 생각지 못한 것을 늙음으로 탓하고는 있었지만, 그가 그렇게까지 거의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도 있었다.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황강의 동남부 지류에 맞닿은 곳
K의 고향인 이 곳은 워낙에 골짝이라 지금도 변변한 도로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가 태어났던 51년은 동란이 한창일 때였지만, 전쟁도 이 곳까지 손을 뻗진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가 군대를 갈 때까지도 K의 아버지의 서당에는 글 읽는 아이들이 복작거렸다. 
군에 복무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제대 후에는 곧장 서울로 직장을 잡은 K에게는 
그래서 이 곳은 시간이 멎어 주는 곳, 적어도 느릿느릿 양반 걸음을 해 줄 곳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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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순덕한 호랭이 트랙백 0 : 댓글 2

봄날

2009/10/16 10:13 from 서고/L을 위한 노래

봄날

이시영

목련이 활짝 핀 봄날이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불법체류 노동자 누르 푸아드(30세)는 인천의 한 업체 기숙사 3층에서 모처럼 아내 리나와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목련이 활짝 핀 아침이었다. 우당탕거리는 구둣발 소리와 함께 갑자기 들이닥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다짜고짜 그와 아내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겉옷을 갈아입겠다며 잠시 수갑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푸아드는 창문을 통해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리다 그만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져 숨지고 말았다. 목련이 활짝 핀 눈부신 봄날 아침이었다.

* 미누에게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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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순덕한 호랭이 트랙백 0 : 댓글 0

꽃잎1

2009/07/05 23:43 from 서고/L을 위한 노래

김수영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 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 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 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 같고
혁명 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 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 같고                             <1967.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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