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공간 L 불어세미나팀>
욥, 노예의 힘
안토니오 네그리
프랑스어 판 서문
나는 이미 아주 오래 전, 1982년 혹은 1983년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감옥에서 지낸 지 4년 째가 되던 해였다. 바로 그 때 나는 레오빠르디에 대한 저작을 쓰고 있었다. 당시 나는 고통에 관한 새로운 것에 대해 작업하고 있었였다. 레오빠르디는 현상학과 시학을 동시에 표현했다. 욥은 하나의 <<선례>>였다. 내가 처해있던 상황은 실로 절망스러웠다. 정치적인 이유로 오래 전부터 감옥에 있었으며, 이곳에서 어떻게 나갈 수 있을 지 생각할 수 없었다. 저항을 위한 열쇠를 나는 고통에 관한 분석에서 찾고자 했다.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 나 스스로를 방어할 힘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나자, 감옥의 고통과 비참함을 머리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억압에 대한 하나의 독해, 즉 저항을 가능하게 하고 정치적 패배 그 자체를 권력에 대한 하나의 비판으로 해석하게 해주는 하나의 독해를 발전시키는 것이 문제였다. 감옥에서 나오자 1983년에 나는 추방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고통스러운 상태에 대한 해석은 나에게 저항의 본질적인 계기가 되었다. 욥에 대한 수십개의 독해가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것도 악에 대한 신학적 질문에 응답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신이 존재한다면, 악은 어디에서 왔는가? Si Deus est, unde malum? 악이 존재한다면, 신은 왜 악을 존재하게 했는가? Si malum est, cur Deus? 그런데 이는 이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방의 길을 구축할 것인가를 발견하는 것의 문제이다. 이것은 변신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감옥과 추방으로부터의, 권력의 절대성으로부터의 해방. 역사적 이행-되돌릴 수 없는 한 시대의 끝을 파악하고 테러로 변형된 유토피아에 대한 악몽을 설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정치적 패배로부터의 해방. 해방의 추구하면서 욥의 길을 따르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레오빠르디로 인해 그것은 훨씬 더 쉬워졌다. 전적인 낭만주의자로서 레오빠르디는 아이러니에 대한 뛰어난 감각(다시 말해 정념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비판하는 능력)과 사유를 실천으로 옮기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사유와 실천은 시로 해방되었다. 나는 서로 다른 시기에 이루어진 레오빠르디의 활동에서,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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